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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남학구당(水南學求堂)

주소
전남 담양군 고서면 분향리 1
지정별
문화재자료 제12호
규모
학구당 4칸, 문루 2층 4칸
시대
조선시대
지정일
1984년 2월 29일

소개

지방민의 높은 교육열을 반영하듯 관학(官學)으로 중앙에 성균관(成均館), 지방에 향교(鄕校)가 있었고, 사학(私學)으로 서원(書院), 서재(書齋), 서당(書堂) 등이 있었는데 유독 이곳 담양만이 우리나라에서는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학구당(學求堂)이 있다.



수남학구당은 창평학구당이라고도 불리며 유교 사회적 기풍을 진작시키기 위하여 인재를 양성하던 곳이다. 이 당의 근원은 원래 고려말에 건립된 향적사(鄕績寺)라는 것이었으나 조선이 건국되면서 척불정책(斥佛政策)에 의해 폐사(廢寺)의 경지에 이르자 승려들이 모두 흩어지게 되었다.

이에 환학당(喚學堂)이란 선비가 승려들을 다시 불러들여 강학하였으므로 후일 그 제자들이 환학의 뜻을 받들어 학구당이라 이름하였다. 조선 선조 3년(1570) 창평에 살고 있는 25성씨(姓氏)가 숭고한 도의(道義)와 국가의 문무정책(文武政策)에 따라 학업을 연구하며, 유교(儒敎)의 기풍을 진작하기 위하여 명칭을 서원이라 바꾸어 중건하였으나, 광해군 11년(1619) 다시 ’창평학구당(學求堂)’이라고 고쳤다.

그 후 수차 중수(重修), 현재는 본당 4칸, 문루 2층 4칸, 관리사 3칸이 있으며 현재는 18개 성씨가 운영하고 있다.



이 당(堂)은 고려시대 불교진흥정책(佛敎振興政策)에 따라 사원이 건립되었다가 조선(朝鮮)이 건국되면서 사회적 이념이 척불숭유정책(斥佛崇儒政策)으로 바뀌게 되자 전대(前代)의 정치이념(政治理念)의 구조물 등을 없애고 새로운 국가의 정치· 사회적 구조에 맞는 구조물들을 전대(前代)의 구조물 자리에 새로이 건립하여 현재의 정책을 유지 확립하려는 의도에서 학구당(學求堂)이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서 사찰(寺刹)이 있었던 것을 허물어 버리고 그 자리에 사원(書院)이나 향교(鄕校)를 건립하여 전(前) 정권의 잔유물(殘留物)들을 없애버리는 방편인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담양에 소재한 수북·수남학구당(水北·水南學求堂)은 새로운 사회질서에 맞는 형태로 바뀌었던 유적이라는 점에서 당시 정치·사회적 면모를 살피는데 좋은 유적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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