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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오충정려(潭陽 五忠旌閭)

주소
전남 담양군 대전면 평장리 265
지정별
지방기념물 제16호
규모
정면 3칸, 측면 1칸
시대
조선시대 (1748년)
지정일
1974년 12월 26일

소개

임진왜란 때 순절한 밀양인(密陽人) 박천붕(朴天崩)과 병자호란 때 순절한 천붕(天崩)의 네 명의 아들을 기리는 정려(旌閭)로 영조 24년(1748)에 명정되어 건립된 것이다.

박천붕(朴天崩 1545-1592)은 조헌(趙憲)의 문하에서 수학, 27세 때 무과(武科)에 급제하였다. 임진왜란(壬辰倭亂)이 발생하자 조헌(趙憲) 막하에 들어가 그의 종사관이 되어 여러 전투에서 공을 세웠으나, 청주싸움에서 전사하였다.



1636년(인조 14년) 병자호란 때에는 박천붕의 네 아들인 원겸(元兼), 인겸(仁兼), 예겸(禮兼), 의겸(義兼)이 충청병사 이의배(忠淸兵使 李義培)의 선봉장으로 활약하다가 모두 전사하였다.영조24년(1748) 박천붕은 충근호성공신(忠謹扈聖功臣)에, 네 아들은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에 추증되고 정려(旌閭)를 명받게 된다. 정려의 원래 위치는 평장리 화암마을 뒤편에 있었으나 정조 24년(1800) 방화로 소실되었으며, 그 후 80여 년이 지난 고종 23년(1886) 현 위치에 다시 지은 것이다.



정면 3칸, 측면 1칸의 정려 내에는 신구비 2기가 있는데, 구비(舊碑)는 1886년 건물을 다시 지으면서 세운 것으로 사각형의 나직한 기단에 비신(碑身)과 팔작형 지붕돌(높이 1.37m)을 갖추었다. 전면은「밀양박씨오충기실비(密陽朴氏五忠紀實碑)」라 해서체(글씨크기 10cm)로 쓰고 뒷면은 아무런 글씨가 없다. 그러나 원래 오충정려에 대한 내용을 기록해 두었으나 1938년 일본 경찰에 의해 임의로 글자가 훼손되어 없어진 것이다.



그 뒤로 일제가 물러나고 다시 각문하여 신비(新碑)를 건립하였다. 신비(新碑)의 내용을 보면 전면에「밀양박씨오충기실비(密陽朴氏五忠紀實碑)」라 각자하고(글씨크기 10cm) 배면과 좌우면에 5부자의 순절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비문의 찬(讚)은 기우만(奇宇萬)이 하였다. 신비의 총높이 1.82m로 나지막한 방형기단에 비신(높이 140cm, 너비 54.5cm, 두께 27cm)과 팔작형 지붕돌을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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