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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도농악(右道農樂)

주소
전남 담양군 봉산면 와우리 299-2 (전수관 299-1)
지정별
지방무형문화재 제17호
지정일
1996년 10월 14일

소개

기능보유자 : 김동언(남, 42. 7. 1생)



농악은 본래 신을 위한 종교 음악으로 민족신을 제사하는 의식에서 연행되었다. 그래서 명칭도 굿, 매구, 매굿 등으로 불렀다. 한편 마을 공동 노동이나 기금 모금, 군사 행동과 관련되는 경우에는 그 기능을 중시하여 풍물, 건립, 걸궁, 금고, 군구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당산제, 갯제, 마당밟이와 같은 마을굿에서 마을신을 제사하기 위해 연행하는 것이 농악 본래의 기능이라고 할 수 있다. 남도 농악(南道農樂)은 연행 방식, 복식, 음악성 등을 기준으로 크게 「左道굿」,「右道굿」,「도서해안굿」,으로 분류할 수 있다.



그리고 도서해안굿은 남해와 서남해 일대인 고흥군 금산면과 완도, 진도 일대에서 연행되는 농악이다.

영광 농악은 우도농악의 특성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 분류상으로 우도농악에 속한다. 농악대의 편성은 농기, 영기, 나팔, 새납, 쇠, 징, 북, 장구, 소고, 잡색으로 구성되어 있다. 영광 농악의 전모는 마당밟이굿에서 잘 표현된다. 마당밟이굿은 정초 당산제를 지낸 다음 家家戶戶 순방하면서 가정의 축복을 비는 굿이다. 우도 농악에서는 상쇠놀이와 설장구놀이가 인기가 있다.



우도 농악 상쇠 전경환(全敬煥)은 영광 남천리에서 태어나 17세 되던 해에 장성에 사는 상쇠 명인(名人) 최화집(崔化集)에게서 쇠치는 법을 익히고 20세에 전북 고창군 성숙면 남창리에 사는 강성옥(姜聲玉)에게서, 23세에는 고창 아산면 남촌에 사는 朴成根에게서 배우고 33세에는 전남 영광군 법성포 金成洛의 종쇠가 되었다. 그리고 40세 되던 해에 상쇠로 독립하여 활약하였다. 그러다 1970년대 초 영광 농악당을 조직하여 공연하였다.



설장구 김동언(金東彦)은 작고한 설장구 명인 김명선(金明先, 예명 김오채, 1994. 5.22 작고)의 설장구를 이어 받았다. 1942년에 담양 봉산면 와우리에서 태어났으며 어렸을 때부터 대보름 농악에서 무동의 역할을 하였다. 어려서 담양 봉산 양지리의 설장구쟁이 정진만씨에게서 장구를 배웠으며 직접 장구를 만들어 치기도 했다. 15세에 이동래 선생에게서 사사하기 시작하여 광주 사람 채막동에게서 5년, 여수 출신 임재식 선생, 그리고 김오채 선생에게서 사사했다. 이상과 같이 김동언은 정진만, 이동래, 채막동, 임재식, 김종해, 김오채 등의 선생에게 설장구를 사사하면서 보다 특색있고 화려한 우도농악 설장구를 익혔으며, 현재 우도농악의 진수인 설장구를 계승 발전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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