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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유영정(李萬유影幀)

주소
전남 담양군 남면 지곡리 319(가사문학관)
지정별
지방유형문화재 제148호
규모
가로 60cm, 세로 147.6cm
시대
1750년경
지정일
1987년 6월 1일

소개

영정(影幀)’이란 전신상으로 사모관대에 대례복으로 정장한 조선시대 후기 영·정조대의 전형적인 초상화 양식을 취하는 공신도상을 말한다. 약간 우향하여 의자에 두 손을 소매 안으로 넣고 앉은 자세로 구름무늬가 장식된 검은 관복에 가슴의 흉배는 무신의 공훈으로 승급한 해태와 십장생(十長生)을 수놓은 것이다.



흰 수염의 얼굴표정은 이만유의 말년 모습으로 추정되는데, 특히 얼굴에는 만년의 노인다운 인자한 성품이 잘 드러나 있다. 얼굴 표현 화법은 엷은 담채로 음영을 더하고 주름살을 선묘한 초상화의 주안점이 되는 전신수법이 잘 구사되어 있다. 그런데 이 전신상은 좌우로 그림이 약간씩 잘려나갔으며 우측부분은 상이 손상되어 있다.



이만유(李萬宥, 1684-1750)의 본관은 한산(韓山), 목은 이색(牧隱 李穡)의 15대손으로 충남 홍주생이다. 자(字)는 숙함(叔咸)이고 호(號)는 충효문무(忠孝文武)를 겸비하였다는 사상당(四尙堂)으로 영조(英祖)가 사호(賜號)한 것이라 한다.



숙종 45년(1719) 무과에 급제한 후 낙안, 영흥 등 여러 현(縣)의 현감 또는 군수를 지냈으며, 1728년(영조 4)에 일어난 이인좌(李麟左)의 난 때 중영장(中營將)으로 이의 진압에 공을 세워 한원군(韓原君)에 봉작되었다. 1743년 대청교섭(對淸交涉)의 공을 높이 사서 형조판서(刑曹判書)가 되기도 하였다. 말년에 담양에 은거, 67세로 세상을 떠났다.



사후에 ’숭정대부 판돈녕부사(崇政大夫 判敦寧府使)’에 추증되었다.



이 영정(影幀)은 청과의 대외교섭에 대한 공훈으로 짐작되며 제작자는 당시 도화서의 화원이 그린 것으로 공신영정의 격식과 함께 뛰어난 솜씨를 갖추었다. 조선후기 공신 초상의 대표적인 예로 초상화 연구에 사료적 가치가 크며 회화적 기량도 뛰어난 우수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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